의회에바란다
문창동 사무실에서 라디오들으며 네이버부동산물건 올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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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 | 작성일 | 2025.04.14 | 조회수 | 25 |
문창동 사무실에서 라디오들으며 네이버부동산물건 올려 롯데라디오가 볼륨이상이오고 부동산분양임대 에서 유치권행사로 세입자보호 .대전 문창동에서 부동산분양임대을 할 때 사무실에서 라디오을 항상 틀어 놓았다, 3월 말에 갔는데 날씨가 을씨년 스럽고 해서 건물에 들어가기도 좀 무서웠다. 그래서 라디오을 틀어놓았다. 건물은 비어 있기도 하고 낮에는 사람들이 없다 저녁에 들어간다고 했다. 라디오을 틀어놓으며 일을 하다가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대부분 나의 딸을 키우는 내용이었다. 1980년대 말에 대학을 다니면서 디제이써클에서 음악을 틀다보니 내가 사연과 신청하는 노래는 대부분 오래된 팝송이었다.아이의 학교생활이나 나와의 사연이었다. 당시 중학생이라 중학교다니면서 일과도 썼던 것 같다. 사연을 보내고 노래을 신청하면 디제이 아나운서들이 커피쿠폰을 보내왔다. 나는 그 커피쿠폰을 내가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의 여동생. 님동생. 조카들. 네이버 밴드에서 연락된 태평국민학교6학년1반동창들에게 보냈다. 한 번은 인터넷에서 KBS 클래식 정기음악연주회에 당첨이 되어 초대장이 왓는데 서울에는 가지을 못했다. 딸과 함께 가기에는 대전에서 서울까지 기차비와 교통비을 무시못하고 저녁열시인가 정도에 끝나면 대전에 내려오기가 좀. 여의도kbs방송국에서 택시을 타고 영등포역에 가서 무궁화호을 타고 대전에 오거나 서울역까지 가서 기차을 타거나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문제였다. 자동차가 있으면 쉽게 왔다 갔다 했겠지만 말이다. 나는 자동차면호도 자동차도 없다. 그런데 나중에는 라디오가 볼룸이 잘 작동을 안했다. 어쩔떄는 크게 나오고 어쩔때는 작게 나오는 것이었다. 롯데전자로 작은 중국산회색라디오였다.내가 사무실에 있기가 좀 이상하다고 하니 라디오을 가져가라고 주었다. 집에 있떤 것은 아니다. 집에 여러개을 라디오을 샀었다. 마지막에는 소니라디오을 샀던 것 같다. 시디가 되는 것이었는데 한참을 쓰다가 망가져서 버렸다. 요새는 마트에도 한국산 라디오도 별로 안나온다. 대부분 필립스나 소니와 작은 중소기업 라디오다. 그런데 문제도 있다. 디부분 중국산인데 성능은 좋은것 같은데 빨리 망가진다. 옛날에 일본의 봉사단인 일본협력대 JOCV가 이야기하기을 일본에 소니 전자도 일본에서 만들었느냐 멕시코등의 다른 나라에서 만들었느냐 생산공장에 따라 전자제품의 질이 다르다고 했다. 내가 봉사단으로 파견되었던 곳은 인도 전자제품이거나 아니면 소니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라디오등이 면세점에서도 팔리고 방글라데시 스타디움마켙에서도 팔리었다. 박미라언니가 이야기하기을 자기가 냉장고을 사러 다니는데 대우전자가 인도브랜드인가로 냉장고을 생산한다고 이야기을 했다. 나는 미라언니가 쓰던 냉장고을 사서 봉사단기간내에 사용했다. 언니는 다른 두명의 봉사단과 다카 산티나고르의 아파트에서 살기로 해서 세명이 쓸 더 큰 냉장고을 사기에 자기는 필요가 없다며 나보고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왔었다. 아주 작은 냉장고였다. 이 냉장고을 팔면서 스탠드의 작은 선풍기을 나에게 덤으로 주었다. 방글라데시의 전자제품들은 견고했다. 선풍기는 내가 올떄쯤에 목이 부러져서 사용하기가 그랬지만 말이다. 일본 친구들은 내가 살던 집을 오더니 이런집에서 작은 선풍기는 주택가에서 더구나 사방이 막힌 집에서 더위을 이겨내기에 힘이 들다고 일본으로 귀국하던 한 봉사단원이 지름이 1M이상이 되는 커다란 팬을 주었는데 나는 그때 내가 피부상처 치료을 해주던 방그라데시 환자에게 빨리 피부가 낳기을 원하면서 그 팬을 주었다. 더운날씨에 다리에 상처가 크게 나서 농이 날까봐 걱정이 되었다. 방글라데시 전자제품이나 인도전자제품도 상당히 견고하다. 디자인은 그당시에 세련된다고 생각은 안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롯데 전자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이 든다. 단지 하이마트을롯데에서 인수해서 롯데 마트라고 하지 만 말이다. 한데 그때 제안을 할까 말았다. 어머니 말씀에도 옛날 전자제품이 견고하고 잘 고장이 안났다고 한다. 요새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고장이 난다는 것이다. 예전에 삼성전자에서는 어느 한 전자제품에 결함이 생기면 그 때 쌩산된 전자제품을 다 모아서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종종 자동차회사에서도 결함이 발견되는 같은 시기에 출고된 자동차을 리콜하기도 한다. 한데 요새는 고객감동서비스는 물러가고 전자제품도 서비스센타에 가보면 대부분 핸드폰 서비스지 전자제품은 잘 보이지도 않고 이야기 들어보면 좀 쓰다가 싫증나면 버리고 새물건을 산다고 한다. 옛날사람들은 전자제품이 고장이 나면 수리을 해서 썼는데 요새사람들은 그냥 버리기도 하고 사용수명도 엄청 짧아젔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건설협회에서부터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부동산등을 검색하다 보니 눈이 나빠젔다. 가만히 보니 예전에 노트북을 살떼 액정화면이 좋다고 해서 삼성전자 노트북을 샀는데 한 십년을 사용했다.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라디오을 들으며 일을 했다. 하이마트로 가져 갈까 하다가 어머니가 어디서 사가지고 왔는지 알수가 없어서 말았다. 볼룸이 고장이 난 것만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집에 어머니가 집에 가져다 놓은 엘지 것도이상하게 볼륨이 고장이 났다. 난 전자제품을 잘 버리지 않는다. 물건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고쳐서 쓰거나 고쳐서 입거나 한다. 구두도 신을때 여러번 기우기도 하고 닦아서 신는데는 이상이 없다. 광만 잘 내면 새것과 같다. 편하고 말이다. 한 동안 부동산분양임대에서 세입자 관리을 하면서 라디오와 친하게 지내서 각종 커피쿠폰에서 화장품, 캔디. 쥬스, 다양한 상품을 받았다. 어머니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전자제품이며 가구도 받아서 살림을 장만한다고 했다. 요새 코웨이 판매회사에 당근을 통해 면접을 보러 갔다와서 보니 카다로그에는 가전제뭎이 많이 없어서 메니저에게 여러가지 전자 제품이 있는지 문자로 보내고 다시 문자을 보냈다. 중고제품도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답장이 없다. 인터넷에 쇼핑몰처럼있어서 주위에 전자제품등을 권유해서 그 사람들이사면 그 수수료을 나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년동안 한달안에 한 상품만 사도 회원으로 인정이 되고 그 수수료가 내 통장에 꽃힌다고 햇다.렌탈서비스로 한달에 저렴하게 내고 3년후에는 내것이 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묻고 싶어서 문자을 햇는데 답변이 없어서 사지을 못햇다. 중고을 알아보니 대전에는 각지역에 중고전자제품이 있는데 교차로에는 한군데 ㅇ니가 두군데 재활용용품매장이 나와있었다. 전자제품이 어느나라 산인지 삼성전자만 해도 중국과 베트남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묻고 싶었는데 전화가 답변이 없어서 지금 다른 곳에 가서 물어볼까 싶다. 우리 어머니시대는 전자제품을 사면 십년정도 생각을 하고 사시고 그만큼 견고했다. 그런데 요새 중고물품점에 가면 몇년안쓰고 버리는 전자제품이 쌓여 있다. 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을 갔을때 그 당시에 농업관련기관에 방문해 보면 창고에 부품하나가 없어서 쓰지 못하고 서 있는 농기계들이 있었다. 지금 현재 우리 나라는 중국과 베트남이 가깝다. 부품 수급도 원활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딸만 봐도 무조건 새것을 좋아한다. 나는 애을 키울때 새옷도 사주었지만 헌옷도 사서 딸에게 입혔다. 내가 크면서 손이 덜가서 인터넷신문에 나가면서는 어머니 장화와 옷. 딸의 옷을 홈프러스와 이마트등에 가서 사주기도 했다.이동네에도 애가 초등학교 3학년 4학년되면서 다시 사회활동을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나에게는 서울이 너무나 멀게 만 느껴지던 때였나보다. 서울에 한강에 아라호크루즈을 갈려고 이야기 하자 딸은 엄마 나 어떤 새옷을 사서 입고 갈까? 빠듯한 생활에 어디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고 좋은 옷도 못사줘서 너 무 미안하다. 부동산분양임대을 하다가 그 빌딩에 유치원행사가 들어오면서 월세계약을 하러온 아버지들이 딸을 부탁하고 가서 쉽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세입자들은 하자 보수이야기을 하면서 전화을 걸어와 하자보수을 하고 하다보니 세월이흘러서 당초와 다른 수입임에도 쉽게 그만 두지 못했다. 부동산분양임대에서 월급이 아니라 활동비로 얼마을 받고 작은 평수라 분양되면 백만원정도에서 임대은 20만원정도 였었다. 그때 코로나 라서 더욱 힘든시기을 보냈다. 어머니나 딸이 아파서 일찍 간다고 문자을 사장에게 하면 편의을 잘 봐주어서 아마 4년을 있었나 보다. 작은 회색라디오는 지금도 집에 있다. 버리기가 그래서 안버리고 있다. 문창동의 7층 작은 사무실에서 책상하나에 앉아서 4년을 같이 하다보니 버릴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 겨울에는 팬히터 하나로 파카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서 근무햇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난 그들의 편의을 보아주었는데 그들은 명절에 선물하나가 없었다, 세입자 관리는 보통 주택관리회사나 관리 직원이 하는일이면 나에게 월급조로 돈을 더준다든가. 월세계약을 연장햇으면 나에게 임대계약금을 주어야 하는데 주지을 않았다. 전화가 오기는 서울에서 한호실이 아니라 건물 통째로 얼마냐는 상담전화가 와서 보고을 했더니 사장이 전화을 상담을 하겠다고 했었다. 문창동에는 새마을 금고가 오층으로 다시 지어져서 이사을 가고 했다. 네이버에 전국부동산에 문창동 물건을 올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