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황일근의원입니다.
임기가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은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의원생활을 마감하고 곧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기 전에 공무원 여러분과 이제 새롭게 선출되신 선출직 공무원이신 의회 의원님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함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2차 대전 전범재판이 열립니다. 피의자 루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독일군 장교가 피의자로 서게 되는데 그는 유대인 600만, 체코·폴란드·독일의 정치범까지 합하여 1100만명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한 그 상징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재판에 유대인 출신으로 2차 대전 당시에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 철학자가 미국 뉴스위크지의 기자 신분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자신이 유태인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뼈저리게 알고 있던 아렌트는 이 재판에 참석하기 전 아이히만을 악마 같은 모습의 소유자라고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만난 아이히만은 아주 온화한 인물, 옆집의 친절한 아저씨와 같은 얼굴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놀라게 된 것은 재판과정 중에 나온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당시에 직업이 군인이었기에 나는 상관의 명령에 충성을 다해 성실히 복종하고 나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다만, 나에게 죄가 있다면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그의 진술에 법정이 술렁였고 아렌트 역시 이 사람의 죄가 무엇인지 철학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제껏 말하던 악 즉, 죄인이란 사회의 윤리규범을 깨뜨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오히려 자신의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이 사람을 정죄할 수가 있을까요?
한나 아렌트는 장고 끝에 이런 글을 쓰게 됩니다. 아이히만의 죄목은 순전한 무사유였고, 이 순전한 무사유가 바로 악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 아무 생각과 고민 없이 권위에 복종하며 따르는 것이 죄며 그 생각 없음으로 인해 1100만이 학살을 당하게 됐고 이로서 그는 악을 심판하는 법정 가운데 서는 주인공이 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 시대의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깊이 새겨야 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 없이 무조건 시키는 것을 하는 것과 높은 것을 추종하는 것 그것은 결코 공무의 일과 정치의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악의 현실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옮겨 놓게 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공무원 여러분!
흔히 빌 공(空)자에 없을 무(無)를 써서 머리와 가슴을 표현하는 그 공무(空無)라는 단어를 앞으로 냉철한 머리와 그 가운데 가진 뜨거운 가슴으로 여러분의 공무를 채우시기를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상 5분발언을 마치겠습니다.